스님 법문
-
[일요법회] 11월 24일 법문
총무스님 2019-11-24
<불심 :불심무구>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수륙재 끝나고 제가 처음 뵙는 거 같습니다. 그동안 수륙재도 있고, 가을에 김장도 하고, 여러 행사가 많았는데, 모두 다 여러분들 덕분에 잘 마무리를 하고, 또 그 공덕을 많은 사람들에게 같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불심>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난 화요일에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진관사하고 우연히 인연이 된 중국 분마그룹 회장님 -한국시민권을 가진 분이신데- 초청으로 중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중국을 4번째 갔습니다. 그동안은 관광이었죠. 부처님 성지를 가고, 아미산, 보타산 등 육조 혜능스님의 발자취를 따라갔었습니다. 그런데, 중국 현지사람이 초청해서 간 건 처음이었습니다. 거기서 제가 느낀 점은 <불심무구(佛心無垢), 부처님 마음에는 때가 없구나.>, 그리고 <그 부처님 마음은 너무 행복하구나.><걸림이 없구나.> 이었습니다. 한국문화와 중국문화는, 특히 한국불교는 중국을 거쳐 왔기 때문에 경전도 우리와 똑같습니다. 그 분이 오셔서 실천적인 면을 보여주시는 걸 보고, 제가 감동을 해서 따라 나서게 됐는데, ‘매사가 황제보다 더 위가 부처님이다.’라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회장님이 이렇게 직접 안 나오셔도 되는데.. ”하니 “무슨 말씀입니까.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하시면서 저희 일정 4박5일 중 돌아오는 날 아침까지 같이 공양을 하면서 시간을 배려해주셨습니다. 그 하나하나 시간이 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워낙 스님과 하나 되고 싶은 마음이셨고, 매일같이 자기 집무실에 부처님 사리를 모셔놓고, 신묘장구대다라니로 하루를 시작하셨습니다. 저녁에도 나무아미타불을 하시면서 하루를 정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불자님을 보면서 수행자인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나는 내가 스님이라는 상에 빠져 있었고, 부처님인 척 하는 게 너무 많았었구나.’ 그러면 <불심>이 무엇인가. ‘불심, 부처님 마음. 부처님 마음은 뭐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의 사견과 내 소견으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순수한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불심이구나, 시비를 하지 않는 것이 불심이구나.’ 그 마음을 4박5일 동안 느꼈습니다. ‘너는 이래서 싫고, 너는 이러 점을 개선해야지.’ 이런 마음이 없어요. 우리 불자님들이 지금부터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을 불심으로 썼을 때, 여러분들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그 불심은 어떻게 하느냐.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기쁜 것, 나의 쾌락이 아니에요. 우리가 뭔가 설정해 놓으면 뜻대로 안되죠, 욕망 때문에. 내 욕심이 차서 뜻대로 안 됐을 때 불행한 거예요. 그런데 법대로 하면 불행하지 않아요. 법대로, 부처님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순리대로의 그 마음. 그 마음으로 우리가 매일 할 수 있는 거, 어떻게 하느냐. 아침에 <정구업진언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하면서 천수경으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저는 그 중에서도 참회진언을,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 다생겁래로 지은 업장을 모두 참회합니다.’라고 발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법계에 원만히 회향하겠습니다.’ 이런 발원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라는 것은 ‘모든 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잘못한 것을 가지고 자신을 자학하는, 그 시간도 아깝다는 거예요. 그냥 모든 불보살님께 내가 귀의하는 것입니다. 그럼 불보살님이 따로 있느냐. 내가 풀을 대하면 풀을, 나무를 대하면 나무를, 가족을 대하면 가족을 부처님처럼 보는 거. 그 연습을 아침에 하는 거예요.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모든 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모든 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모든 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 그러면 내가 불보살님의 세상에서 놀고 있는 거예요. 어떤 스님이 제자를 가르치는데 이 제자가 매일 불평불만이 많아요. 이거는 이렇고 저거는 저렇고, 매일 불만투성이에요. 그래서 ‘이 제자를 어떻게 가르쳐야하나. 법랍은 높아 가는데 매일 불평불만만 많아지니..’ 그래서 제자에게 “얘야, 소금을 한 그릇 가지고 와라. 물을 한 그릇 가지고 와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가지고 오자, “이 물을 소금그릇에 부어라.” 물을 붓자, “먹어 봐라.” 짜다 못해 써요. 진저리를 치니까, 스님께서 허허 웃으시며, “이제는 소금 광에 가서 소금 가마니를 지고서 나를 따라 오너라.” 그리고 연못에 가는 거예요. “그 소금을 부어라.” 소금을 붓고 먹어 보니 아무 것도 없어요. 소금 한 가마니를 부었는데도 그냥 물맛이에요. 짠맛도 쓴맛도 아니에요. “네가 살아가는데, 네 마음이 작으면 작은 그릇의 소금이 짠맛과 똑같다. 네 마음이 커지면 아무 맛도 안 나고, 다 받아들일 수 있다. 세상은 하나란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그 때서야 불평불만이 없이 ‘아, 이것은 내 탓이었구나. 내 그릇이 작았어.’라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감인(堪忍)의 세상이에요. 참고 견디는 세상인데, 참고 견뎌서 되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용수철처럼 튀어요. 그냥 법대로,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부처님, 참회진언, 부처님께 귀의하겠습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겠습니다.> 이 마음을 일으키는 순간 우리 뇌에서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요. 다이돌핀은 엔돌핀의 4,000배, 몰핀의 250배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다 아프지만, 그 아픈 마음을 내 마음 씀에 의해서 호르몬이 나와 그걸 느끼지 못하게 하고 환희심을 일으키느라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불심, 불심, 부처님의 마음에는 때가 없다. 그랬을 때 건강하고, 환희롭고, 내 시간이 아깝지 않은 거예요. 중국에 가서 보고 손들었어요. 역시 대국이구나. 90%가 불자들이에요. 한국 스님들 오셨다고, 특히 우리 주지스님께는 얼마나 잘하시는지. 그게 자기가 가장 행복하다는 거예요. 중국에 감동감동하면서, 인천공항에 내렸는데, ‘역시 한국이 최고구나.’ 그리고 진관사를 들어오니 여기가 보궁이에요. 그러면 이 진관사에 오시는 신도님 한 분 한 분이 다 부처님이시고, 그 부처님이 내가 부처님으로 바라봤을 때 그 부처님은 가피를 받겠죠. 그래서 제 원력을 또 크게 만들었어요. ‘그래, 오시는 분 한 분 한 분 다 부처님 코드를 눌러줘야 되겠다.’ 제가 <불심무구>라는 문구를 참 좋아합니다. 불심무구의 마음. 여러분들도 아침에 일어나서 항상 자기부처님께 감사하면서 ‘그래, 부처님 마음에는 때가 없지. 오늘도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고 해보세요. 또 제가 중국에서 52세 된 분에 관한 비디오를 봤어요. 위암과 난소암에 걸린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분이 나무아미타불을 하면서 임종하는 장면이 지금 유튜브에도 나와요. 자기가 몇 월 몇 일 간다고, 법복을 입고, 도반들이 나무아미타불을 하고, 본인이 부처님께 3배를 하고, 침대에 누워요. 그리고 임종을 해요. 임종하는데 주변에서 향기가 났대요. ‘그러면 암에도 안 걸려야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분은 더러운 몸을 버리고, 새 옷을 받아서 자기가 가고 싶은 데로 몸을 받아 날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신도님들은 지금부터 어떻게 연습을 하냐하면, 항상 마음을 살펴야합니다. 내가 내 습관과 관습으로, 제자스님이 그릇이 작아서 소금이 짜고 쓴 것처럼, 내가 보는 대로 다 걸리게 되면 내 스스로가 다 걸리게 되요. ‘지금 내 마음이 집착해있구나.’ 그걸 볼 수 있는 힘이 생겨야 해요. ‘집착만 없으면 좋은데.’ 그러면서 얼른 부처님 마음에 갖다 놓는 거예요. 부처님 마음에 딱 갖다 놓는 순간, ‘감사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잘못했다는 말을 할 필요도 없어요.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모든 불보살님께 귀의합니다.’하면 됩니다. 그러면 가족 간에 화가 나는 집착, 형제간에 화가 나는 집착, 가족 간에도 서로가 성의가 없을 때, 불심무구가 형성이 되려면 정성이 있어야 해요. 지성이면 감천이 되도록, 그래야 불심무구가 됩니다. 그 마음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매일같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하다보면 내 마음이 부처님 마음으로 채널이 고정이 되어있어요. 우리 수륙재할 때 칠여래가 있었죠. 보승여래(寶勝如來), 다보여래(多寶如來). 내 마음이 지금 괴로운 것은 마음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보석을 주는 거예요. 한번 줘도 충족을 못 하니까 두 번 줘요. 다보여래, 보승여래. 마음이 훈훈해지니까 얼굴이 바뀝니다.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 묘색신여래는 성형외과라고 할 수 있어요. 얼굴 관상이 확 바뀌어요. 그리고 나면 두려움이 없어져요. 내 주머니에 돈이 딱 들어있으면 일단 기분이 좋아요. 내 마음의 주머니가 넉넉해야 되요. 여의주라고 하지요. 그러면 관상이 바뀌고, 두려움이 없어져요. 내 마음이 부자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요. 이포외여래(離怖畏如來)지요. 두려움이 없으면 얼굴에 빛이 나요. 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 에너지에요. 빛이 나기 시작해요. 그 다음에 먹는 게 다 달고 맛있어요. 감로, 이슬 단 맛이에요. 감로왕여래(甘露王如來)에요. 다 살이 되고 에너지가 되고 지혜가 되요. 이제 몸도 마음도 충족이 되었어요. 그 다음에는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그걸 우리는 극락세계라고 해요. 걸림이 없어요. 그게 삶의 이치입니다. “스님, 저는 돈을 벌어도 이런 일이 생기고, 저런 일이 생기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그게 잘 안되는데요.” 욕심이 차서 그래요. 내가 돈을 100만원을 벌었다, 그런데 이 100만원에 너무 감사해요. ‘내가 건강하기 때문에 이 100만원을 벌 수 있구나.’ 이렇게 하면 입지가 서요. 그러면 이 100만원이 1,000만원이 되요. 왜냐하면 마음에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에요. 돈이 고이기 시작해요. 그게 다보여래, 보승여래. 그런데 나는 100만원을 받는데, 저 사람은 1,000만원을 받아요. 나는 언제 1,000만원을 받지, 자기를 자학해요. 그럴 필요 없어요. 1,000만원을 벌었어, 1,100만원 나갈 일이 생겨요. 그래서 지족하는 순간, 성공할 수 있어요. 그러면 인연줄이 좋아져서 돈은 그대로 생겨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또 부처님 가르침도 그래요. 그런데 부처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맨날 헐떡거려요. 찌꺼기, 짠 소금이 많은 것처럼, 자기 그릇이 작아서, 맨날 불평불만이 많고 남 1,000만원 버는 것만 부러워서 이 100만원이 얼마나 소중하고 뿌듯한 걸 몰라요. 그래서 소욕지족(少欲知足)이라고 하죠. 불심과 지족이에요. “스님, 잘 안 돼요.” 왜? 자기가 익힌 습관이 늘 헐떡거리고, 자기 머리에 입력해 놓은 것이 그런 것만 해놓았기 때문에 그래요. 그걸 탓할 거냐. 안 탓해야 된다고 했지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염불을 하셔야 해요. 잠깐이라도 앉아서 하는 거예요. 불교는 메뉴표만 보고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내게 주어진 이 시간, 금쪽같은 시간, 부처님과 대화하는 시간, 이런 시간을 가졌을 때 광박신여래, 묘색신여래, 이포외여래, 감로왕여래, 아미타여래를 친견하는 거예요. 그게 극락세계에요. 그래서 시간만 나면 염불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다리가 건강할 때 절 한번 더하고, 손발이 성할 때, 말 할 수 있을 때, 지금 가족들이 다 일어나 할 수 있을 때 이걸 감사해야 해요. 그런 사람이 부자예요. 이렇게 되기 위해서 매일 관자재보살 반야심경을 외워도 좋은데 말만 외워선 안 돼요. 뜻을 이해해야 되요. 본인이 이해를 하면서 한 개 한 개 이치를 터득하면서 깨달아 가는 거예요. 그리고 업장이 깨질 때는 엄청난 고통이 따라와요. 자기 업이 깨질 때는 고통이 엄청 따르는데 그래도 감사해야합니다. 제가 이번에 다라니 천독기도를 했는데요, 저도 제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가지고, 제가 제자도 키워야하기 때문에 덕현스님을 앞세우려고 했는데, 제가 욕심이 생겼어요. ‘이번에는 내가 다 해야지.’ 제 속에 있는 업이 녹아내리는데 죽을 것만 같아요. 속 때가 무너져 내리는데, 회향하고 나니까, 우리가 열흘 목욕 안하고 있다가 목욕한 느낌이 들었고, 그리고 나서 세상을 보니까 비온 뒤에 너무나 맑은 하늘같았어요. 다 보면 너무 감사하고 고맙고. 여러분들도 그것을 견뎌야 되요. 어느 정도 가서 못하는 사람, 안하는 사람, 그리고 또 다라니 하러 오라고 하면 안 와요. 아주 안타까워요. 그때는 채널을 켜면 저만 키는 게 아니에요. 다라니 하는 사람들이 같이 키기 때문에 용광로에 같이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왜 안 오는 거예요. 1월 달에 또 합니다. 금토일 천독합니다. 삶이 달라집니다. 불심무구가 됩니다. 안 되는 일이 없어요. 인연이 달라져요. 행복해요. “스님, 아무리 목이 빠져라 해도 안돼요.” 왜? 안된다고 설정해 놓았으니까. ‘스님 말씀을 듣고 나도 부처님처럼 내 업장을 녹여보자.’ 계속 단순반복 지속하기 때문에 죽을 거 같아요. 그런데 그걸 하고 나면 첫 번째 자기 성취감이 있어요. 그 성취감이 신념을 키우는 거예요. 마음의 힘을 키워요. 어떻게 자신감으로. 배짱이 생겨요. 그리고 바른 지견이 생겨요. 저는 진관사 신도님들이 이 다라니기도는 꼭 다 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 몸은 60조의 세포로 이루어졌답니다. 그런데 이 우주계, 은하계까지가 60조라네요. 나와 우주, 결국 한 몸이라니까요. 다라니 기도 꼭 하세요. 2020년에는 천독을 시작으로 관세음보살 42수 진언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틀 500독씩 하고, 마지막 일요일에 회향을 하는데, 회향은 꼭 하셔야 합니다. 그랬을 때, 내 더덕더덕한 업장이 녹습니다. 한 번 해서 다르고, 두 번해서 다르고, 세 번해서 다릅니다. 그러면 이 마음이 명경지수같이 되요. 하는 척이 아니라 매사가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이 되는 겁니다. 불보살님께 귀의하게 됩니다. 그런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관사 신도님들은 매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21독씩 하는데, 늦게 해도 한 30분이면 할 수 있어요. 매일 21독씩 해보세요. 정구업진언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길상이여 길상이여 내 길상이여>. 그것도 내 입의 잘못된 것을 참회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길상이여 길상이여 내 길상이여>하면 내 입이 깨끗해지는 거예요. 더러운 물에 맑은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거예요. 정구업진언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개법장진언해서 천수경 앞부분을 다 하는 게 불보살님, 관세음보살님께 내가 귀의하는 겁니다. 그리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빨리빨리,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빨리,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른 생각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로지 단순 반복. 21편을 꼭 하시고, 끝에 서원까지, 참회진언까지 해가지고, 삼보에 귀의까지 해서 마친 후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그리고 걸을 때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러면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는 겁니다. 주어진 이 시간, 회사에 가면 회사에 가는대로, 집안에 있으면 집안에 있는 대로. 불편한 거 없어요. 내가 관세음보살처럼 살았기 때문에 하나도 안 불편해요. 그런데 계속 나쁜 마음, 나쁜 생각, 부정적인 마음, 될까 말까 의심, 안 돼요. 도둑도 믿어야 되요. 내가 본 게 잘못 본 게 많은 거예요. 안이비설신의, 내가 보고 듣고 , 색성향미촉법을 내 잣대로만, 작은 스님의 작은 그릇처럼. 아침에 일어나면 부처님 마음의 스위치를 탁 켜고 절 하고 기도하고. 죽을 때까지 부처님 삶을, 부처님 시간, 불심무고로 살았을 때, 여러분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부자고, 가장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진관사에서 <마음의 정원>을 만들고,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라는 구호를 가지고, 같이 꿈을 공유했는데, 그것을 좀 더 실천할 수 있도록 내년에는 진짜 하드웨어를 만들어 놓고 봉사부분을 더 강화를 할 생각입니다. 봉사를 좀 더 체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제가 대만에 가서도 놀랬는데, 중국도 그렇더라고요. 중국도 스님이 주는 돈을 아무도 안 받아요. 그것도 놀랬어요. 밥을 워낙 잘해줘서 우리가 후원에 돈을 주니까 절대 안 받고, 오히려 후원보살이 천원을 주더라고요. 세계평화를 위해서 진관사에 촛불을 켜달라고. 공양주보살의 마음보다 제 마음이 더 작았어요. 놀랐다니까요. 저는 300원을 그 보살 주머니에 넣어줄려고 몰래 후원을 가서 “오늘 밥이 너무 맛있었다.” 하고 300원을 그 앞치마에 넣어주니까, 천원을 가지고 뛰어와서 땅바닥에서 절을 하면서 세계평화를 위해 한국 절에 가서 촛불을 켜달라고 했어요. 정말 놀랐어요. 그만큼 마음이 크기 때문에. 우리도 할 수 있어요. 저도 밥 먹은 대가 치르려고 했다가 놀랬고 그 분의 불심을 또 배워왔어요. 그 절이 비구니스님 절인데, 그냥 봉사하고 싶다하면 안된대요.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년은 준비를 하는 기간이 될 겁니다. 이건 벌써 예전부터 제가 하고 싶었던 겁니다. 건물불사를 잘 하면 좋지만, 진짜 불자, 나도 부처 너도 부처, 이 불심을 보고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길가는 사람마다 부처님마음이 되도록 시간투자를 할 생각입니다. 오늘 봉사단장님도 오셨는데, 저희 직원도 봉사팀장으로 한 사람 뽑아 올렸습니다. 신도회에서도 많이 공유가 돼야 할 거 같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도 다를 게 하나 없습니다. 또 여러분들이 저를 존중을 잘 해 주셔야 합니다. 무조건 스님만 보면 공경을 해야 합니다. 그 스님이 돌중이든 아니든 간에 그건 그 사람 일이고, 우리는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큰스님 되십시오.>라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 문화가 되야 합니다. 세계적인 사람들에게 우리가 먹을 찍어서 불심무구를 그 사람들의 가슴에 찍어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가 3년차지요. 다 부처님처럼. 그리고 그 도반들도 자신있게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가 가슴 깊은 곳에서 향기가 나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 오늘 <불심무구>라는 주제로 말씀드렸는데, 불심무구는 <지성이면 감천이다.>, 지극한 마음이 되었을 때, 불심무구의 마음이 돌출될 수 있습니다. 있는 척, 아는 척 이건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건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욕심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부처님 법대로 사는 삶의 길로 나는 가겠다.’ 이렇게 서원을 하면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하루에 21편 해보세요. 금강경 외우시는 분들은 자비와 지혜가 충만하기 때문에 이게 길어서, 또 집중이 잘 됩니다. 나이가 들면 그것도 안돼요. <나무아미타불>을 하시면 좋아요. 내년에는 명상을 강화할 겁니다. 1달에 1번은 명상법회가 있을 겁니다. 일중스님이 매달 두 번째 주 일요법회는 명상법회를 하기로 하셨습니다. 일요법회는 첫 번째 주는 특별법회로 주지스님 법문이나 큰스님 법문 또는 제가 법문을 하고, 두 번째 주는 일중스님 명상 법회, 세 번째 네 번째 주는 봉사단체에 관한 법회로, 봉사에 관한 교육 또는 여러분들의 얘기를 하는 시간을 가질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 다스리는 글도 다 외우시죠? 그걸 외워야 되요. 밥을 먹어야 배가 부르는 것처럼, 불교는 자기가 실천을 해야 됩니다. 내가 매일 쓰는 시간을 부처님과 같은 시간을 가져야 그렇게 됩니다. <만법귀일(萬法歸一)>이거든요. 법 법이 다 부처님 법이에요. 그걸 내가 실천을 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제가 이 귀한 인생을 얻었으니 오늘은 화를 내지 않고 어려운 일도 인내하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말을 쓰고 착한 일을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주기도문 외우듯이 하셔야 합니다. 이 글을 외우면서 내 마음을 점검하게 됩니다. 진관사 신도는 첫 번째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두 번째 마음 다스리는 법을 꼭 외우고, 세 번째 신묘장구대다라니는 내 복전이기 때문에 꼭 하셔야 합니다. 잘 살아야 되지요. 행복하게 살아야 되지요. 이것은 돌아가신 노스님 유언입니다. 안 되는 일이 없고, 모든 일을 성취하고 부자로 살고, 돈이 많은 부자보다 마음이 부자면 돈은 자연적으로 따라와요, 용심이 가기 때문에. 진관사 신도라면 이 세 가지 숙제는 꼭 할 수 있도록 합시다.마치겠습니다.
-
[일요법회] 11월 17일 법문
일중스님 2019-11-17
안녕하세요.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자애명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스토리 하나 얘기해 드릴게요. 옛날 조선시대 이야기입니다. 석남사 주지스님한테 들은 이야기인데요. 왕조실록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고, 민간에 전해지는 숙종의 이야기라고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왕은 평소에 암행을 좋아했대요.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나 살피기 위해 변복을 하고 궁궐 밖을 종종 나갔습니다. 어느 날 밤에 한 신하를 데리고 나왔어요. 밤이 늦어 대부분 집에는 불이 다 꺼졌어요. 근데 마을 한쪽의 자그마한 집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선비가 낭랑하게 글을 읽는 소리가 들렸어요. ‘아 기특하기도 하지. 어느 선비가 이리 밤늦도록 글을 읽는고.’하고 그 집으로 갔어요. 옛날에는 대문이 없어서 누구나 마당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마당에 들어가서 손에 침을 발라 창호지에 구멍을 냈어요. 그 문구멍으로 왕은 방 풍경을 들여다봤어요. 그랬더니 방안에서 선비는 탁자에 앉아 글을 읽고 있고, 부인은 다소곳이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게 보였어요. ‘음 풍경이 자못 아름답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글을 읽던 선비가 글을 딱 멈추더니 “글을 읽으니 배가 좀 출출한데, 뭐 요기할 게 없소?”라고 부인에게 얘기했어요. 그 말에 부인이 다소곳이 일어나 벽장을 열고 그 속에서 주발을 하나 꺼내왔어요. 그 주발 뚜껑을 열자 하얀 송편 두 알이 있었어요. 왕은 가만히 계속 지켜봤어요. 선비는 송편 한 알을 집어 맛있게 먹었어요. 그래서 왕은‘하나는 자기가 먹고, 다른 하나는 부인에게 주리라’고 기대를 하며 바라보았죠. 그런데 그 선비가 하나를 다 먹고, 또 하나를 집어 자기 입으로 가져가는 거예요. 왕은 그걸 보면서‘괘심한지고.’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선비가 송편을 자기 입에 딱 물고 그것을 부인에게 입으로 전달하는 거예요. 그걸 계속 지켜보면서 왕의 마음에는 부러움이 일어났어요. ‘와, 참 예쁘다. 보기 좋다. 저 사람들의 사랑이 참 기특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왕궁으로 돌아온 왕은 그 다음날 아침에 중전을 만났어요. 중전에게 “ 중전, 송편이 먹고 싶구려. 송편 좀 해주시오.”라고 말했어요. ‘단 한 번도 무엇이 먹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 왕께서 어찌 송편을 드시고 싶다고 하는고.’라고 생각하며, 중전은 수라간에 가장 맛있는 송편을 가장 아름답게 해서 임금의 수라에 올리라고 주문을 했어요. 수라간에서는 난리가 났죠. 짧은 시간 안에 송편을 대령하라고 하니까요. 부랴부랴 오색의 아름다운 송편을 커다란 접시에 소복하게 담겨 다섯 접시가 들어왔어요. 왕은 그걸 가만히 지켜보았지요. 그 때 왕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왕이 먹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 담뿍 담긴 두 세알의 송편이었는데... 커다란 접시에 수북이 담겨진 송편이 아니었어요. 그걸 보면서 왕은 마음으로 질려버렸어요. 스토리는 여기까지입니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행복은 어디에서 오나요? 행복이 무엇인가요? 행복은 많은 양에 있을까요? 아니면 마음에 잇을까요? 도대체 행복이란 게 무엇인가요?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서 송편 두알에 대한 애기를 해드렸습니다. 우리 모두 행복을 원해요. 세상에는 수백 가지 직업이 있어도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단 한 방향이에요. 행복이라는 방향입니다. 나는 스님이 되어서 행복을 추구하고, 요리사는 요리를 통해서 행복을 추구하고, 가수는 노래를 부르면서 행복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마지막 정거장은 행복이라는 정거장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행복을 추구함에도 우리는 괴로운 일이 너무 많아요. 개개인의 괴로움뿐만이 아니라 사회가 주는 괴로움도 너무 많지요. 정치문제, 경제문제, 사회문제 등등 우리는 늘 미세하게 불안과 긴장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긴장이 지속되면 우리 몸과 마음 어디선가 문제가 생겨요. 편안하게 바닥을 딛고 사는 것이 아니라 허공에 붕붕 떠서 살아가는 것처럼, 현대는 늘 불안정한 상태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명상이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명상은 마음속에 있는 소소한 불안, 두려움, 근심, 걱정 등을 없애 줄 수 있어요. 실제로 다리가 부러져서 아픈 통증은 약이 담당해야 할 부분이지만, 마음이 만들어 낸(Mind-made) 고통과 괴로움들은 명상과 지혜를 통해서 씻어낼 수가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경험하는 70%의 고통은 대부분 마음이 만들어 낸 고통이라고 합니다. 사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데도 우리는 괴로워하고 힘들어 합니다. 내가 현재 위급하지도 않고, 위험하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모르게 늘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죠. 이런 번뇌들은 마음챙김과 마음집중 명상을 통해서 정리할 수 있어요. 우리가 지금 7분 명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편안해졌어요. 명상은 지속성을 가지면서 꾸준히 하다보면 마음의 힘이 생깁니다. 중심감이 생기고 안정감이 생겨요. 그래서 소소한 번뇌들에 휘둘리지 않고 후레쉬한 마음으로 하고 있는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명상이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제거하는데 탁월하다는 연구결과가 아주 많아요. 명상 붐 현상은 이런 데이터를 기반으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자 그럼 오늘은 자애명상에 대해서 얘기해 볼까요. 자애(慈愛)는 빨리어로 멧따(metta)라고 하는데, 이 ‘메따’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 호의, 배려, 우애, 사랑, 적극적인 관심 등이 포함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자애명상은 “내가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안녕하기를!,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안녕하기를,” 이라는 자애구절을 활용합니다. 이 자애구절을 가지고 내 가슴에서 가장 긍정적이고 따듯한 자애의 마음을 일으키고 개발해가는 명상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애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자애 구절을 활용합니다. 두 번째, 자애를 보낼 대상이 필요합니다. 세 번째, 지속적으로 마음 챙기고 주의 집중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요소들을 가지고 자애명상을 하는데요. 자애명상은 가장 안전하고 쉬우며 사랑받는 명상이기도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요. 버스에 앉아서도 ‘이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기를!’, 또 집 안에서는 ‘나의 아들딸, 나의 남편,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다 행복하기를!‘ 하고 명상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럼 잠시 동안 자애명상 한번 해보겠습니다. 명상의 자세를 잡아봅시다. 허리, 척추 뼈 반듯하게 세우시고, 눈은 감거나 반개하시면 됩니다. 본 명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즐거웠거나 기뻤었던 일, 행복했었던 일 하나 잠시 떠올려보세요. ... 행복했었던 그 때 그 당시, 나의 기분과 얼굴표정을 떠올려봅니다. 그때 그 당시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던 것처럼, 지금도 앞으로도 기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자애명상 시작해 봅시다. 첫 번째 자애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내가 진정으로 행복하길. 내가 진정으로 평화롭기를. 부디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이 자애구절을 12번 쯤 마음속으로 나지막하게 읊조려보세요.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가슴에서 실제로 일으켜봅니다. 두 번째 대상은 여러분이 존경하는 분, 고맙고 감사한 분 한 분만 떠올려 보세요. 그 분의 환한 얼굴표정과 인품을 떠올리고, ‘이 분께서 진정으로 행복하고 편안하시길, 행복하고 편안하시길, 행복하고 편안하시길’이라고 자애구절을 12번쯤 읊조려봅니다. 이번에는 ‘지금 이 순간, 진관사에 있는 모든 스님들과 불자님들이 행복하시길, 평안하시길, 안녕하시길. 행복하고 평안하시길’행복하고 평안하시길’ 이번에는 여러분과 인연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해 볼까요? 한 분 한 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없어도 괜찮아요. 여러분과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하시길, 평안하시길. 행복하고 평안하시길. 행복하고 평안하시길.‘ 그럼 마지막으로 모든 중생, 모든 생명들을 대상으로 해2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중생들, 목숨을 가진 생명들은 다 행복하기를 평안하기를,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명상 벨 울림) 20분정도 했는데, 지금 마음이 어떤가요? 편안해지셨나요? 자애명상을 하면 금방 편안해지고 마음이 깨끗해져요. 마음이 불편할 때, 뭔가 불안하거나 근심걱정이 있을 때, 자애명상을 해보세요. 저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향해서 근심걱정을 하는 대신 ‘너는 잘할 거야, 잘할 거야.’라고 믿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내 아이가 사고 치면 어떡할까.’ ‘내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할까.’ 이런 생각은 내려놓으시고, ‘잘할 거야, 잘 될 거야, 당연히 잘 할 수 있지,’ 이렇게 따듯한 마음 긍정적인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엄마의 마음은 자식에게 분명한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러므로 부정적인 마음 대신 긍정적인 방향으로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간단하게 자애명상을 해봤어요. 집에서건 어디에서건 간단히 자애명상을 해보세요. 걸어가면서도 ‘내가 행복하기를, 내가 평안하기를.’ 내 가족들이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버스를 기다리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면서도 쉽게 할 수 있어요. 마지막에 꼭 잊지 말고 해야 될 구절은 ’모든 중생들이 다 행복하기를, 고통받지 않기를’ 이라는 구절도 반드시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1톤의 이론보다 1온스의 실천이 더 가치있다.’ 고 쉐우민 사야도는 말씀하십니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명상을 해봅시다.
-
[다라니]관세음보살 42수 진언 다라니 3년기도 회향 및 천독다라니기도 회향 법문
조계종 포교부장 가섭스님 2019-11-10
<다라니 기도로 법의 생명을 깨우자.> 다라니기도 잘 마치셨지요? 밖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더라고요. 무슨 꽃비냐 하면 낙엽꽃비. 낙엽꽃비가 다라니기도 내내 내렸어요.제가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존경하는 법해스님이 낭랑하게 축원을 하시는데, 어찌 그리 잘할꼬. 하늘에서는 낙엽꽃비가 내리고 너무 좋았어요. 왔다 갔다 하고 있었어요. 왜 그랬냐하면, 내가 왔다 갔다 하면 좀 빨리 끝낼까 싶어서(웃음) 가야할 시간은 있고, 마음은 급하고, 할 얘기는 많고, 해주고 싶은 애기는 많고 바빠 가지고. 그래서 덕원스님한테 저기 올라가 있다가 “앞에 가있자. 내가 키가 크니까 얼굴이 보일 거다. 그럼 빨리 끝나지 않을까.”하고 왔는데, 안 먹히더라고.(웃음) 기도에 쫙 빠져있는데. 그리고 손수 쓰신 다라니를 받으려고, 뒤에서 보니까 난 BTS가 온 줄 알았어요. 줄을 쫙 서서 다라니를 받으려는 열정이 부글부글 타. 너무 좋았습니다. 다라니기도를 늘 하는 줄 아는데, 다라니기도를 해서 우리가 얻는 게 뭘까. <다라니 기도로 법의 생명을 깨우자.>라는 주제로 짧게 할까 합니다. 왜냐하면 끝나고 나서 천도재도 지내야하죠. 여러분이 천수경을 늘 외우다보면, 다라니를 늘 하다보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정구업진언>이잖아요. 그 다음 나오는 게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오방을 안팎으로 편안하게 하는 진언, 그 다음이 <개법장(진언)>, 개는 열다, 오픈한다는 뜻이에요. 절 문도 열어놔야 들어오잖아요. 법당문도 열어놔야 들어오죠. 가게도 열어놔야 돈을 벌어요.법장은 법의 창고, 곳간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그 법장은 우리 안에도 있어요.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곳간이 있는데,그 곳간을 여래장이라고 합니다. 경전에 보면 <여래를 보고 싶은 자,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 연기를 볼 것이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연기나 법이나 여래나 다 같은 말이지요. 내 안에 여래장이 있는데, 여래가 숨어져 있는 데가 있는 거예요. 그 법을 여래로 바꾸면 개여래장인 거예요. 내 마음에 여래의 장, 곳간을 여는 거예요.정구업진언을 하고, 내 입을 밝히고, 입이 방정이라 입으로 짓던 업이 많잖아요, 그걸 맑히고, 그리고 오방의 모든 신을 다 편안하게 하고, 내 마음의 여래의, 법의 생명의 문을 다 여는 거예요. 여래장이란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법의 생명이란 말이에요. 우리는 육신의 생명도 있지만, 부처님을 만나서 열어야 되는, 새롭게 거듭나 태어나야 되는 것이 법의 생명이에요. 이 법의 생명은 우리의 육신처럼 살아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가는 거예요. 내 마음에 여래, 법의 생명이, 심장이 뛰고 있느냐, 안 뛰고 있느냐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다라니를 열심히 읽는 것은 이 마음에 있는 법의 생명을 움터서, 성장시켜서 부처님의 나라로 가기위한 거예요. 육신은 다 유통기한이 있잖아요. 그래서 여기 앉아계신 분 중에 50년 후에 살아계신 분은 아무도 없어요. 나를 포함해서. 그런데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3,000년이 흘러오면서 사람들은 몸이 다 바뀌는데 안 바뀐 게 있어요. 뭐가 안 바뀌었어요? 법이 안 바뀌었네. 법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잖아요. 법은 여래라고 했지요. 여래는 연기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내 마음속의 법의 생명을 움터야 해요. 그래야 다음 생에 여러분이 여기 와서 다라니를 할 수 있어요. 진관사 와서. 법의 생명을 움트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난번에 200일 회향 때 와서 조금 말씀드렸는데, 절납, 절에 나온 햇수가 있어요. 우리는 승납이라고 해요. 여러분은 절납이라고 해요. 농담이에요.(웃음) 절납이 아무리 오래 되도 이 마음에 법의 생명을 움트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에요. 심각한 얘깁니다. 마음속에 법의 생명이 움트고 있느냐. 법의 생명이 작동하고 있느냐를 점검해야 해요. 다라니기도를 열심히 하면 이 법의 생명이 거듭 태어납니다. 그래서 다라니를 하는 거예요. 다라니의 공덕은 여러 가지가 대장경에도 나오고 있지만, 딱 한마디로 축약해서 <다라니 기도의 공덕은 알아서 정리된다.>입니다. 다라니기도의 공덕은 하다보면, 알아서 정리가 되요. 저도 소싯적에는 다라니기도를 꽤 했습니다. 딱 앉으면 4시간 40분 동안 물도 안마시고 했어요. 한번 잡으면 끝까지. 신도들은 자유롭게 해우소도 다녀오고 하지만. 그게 버티는 거죠. 무슨 타고난 기력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고 버티는 겁니다. 신심으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다보면, 내가 내린 결론은, 알아서 정리가 되요.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덥고, 가을이 오면 열매 맺고, 겨울이 오면 낙엽이 떨어져 그 다음 해 봄을 준비하듯이, 다라니기도는 바로 그런 겁니다. 알아서 정리된다. 걱정, 염려가 있는 사람들 그럴 필요가 없다니까요. 다라니만 해라. 역대 큰스님들 중에 다라니 성취해서 큰스님들이 되셨어요. 그게 잘 드러나서 그렇지, 역대 큰 스님들 중에 다라니기도 안하신 분들이 없어요. “이생에 여러분들이 법해스님을 따라 열심히 다라니기도를 하는 공덕으로 법의 생명이 거듭나고 태어나서 여러분이 여래가 될 것이다. 부처가 될 것이다.” 이 말이에요.(박수) <개법장진언>이라는 진언은 <법장을 여는 참말>인데, <옴 아라남 아라다>(3번)(박수). 옴은 길상이란 뜻이에요. 모든 시작이란 뜻인데, 아라남는 무쟁삼매란 뜻입니다. 다툼이 없는, 싸움이 없는 삼매. 고요하게 일여하게 있는 것을 삼매라고 해요. 아라다는 성취한다는 뜻이에요. 다라니를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무쟁이 된 거예요. 다툼이 없어요. 다툼이 가장 심한 게 어디에요? 내 마음이에요. 돌이켜 보십시오. 어릴 때는 잘 모르는데, 살다보면 알게 되요. 제일 다툼이 심한 곳이, 전쟁이 심한 곳이 내 마음속이에요. 이것이 정리가 돼야 합니다. 그 정리되는 것이 다라니기도의 공덕입니다. 그러니까 <옴 아라남 아라다>를 할 때 내 마음속의 모든 다툼이 다 끊어져서, 그게 성취될 때 그 근원바탕으로 법이 드러난다. 쉽게 말하면 내 마음속의 지글지글 보글보글 막 끓고 있는데, 아침에 찌개 끓듯이 끓고 있는데, 거기에 다른 것들이 올라올 틈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내 마음속의 번뇌를 쉬어야 다른 신통묘용한 힘이 나올 수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다라니를 열심히 해야 된다. 그러니까 다라니 기도할 때 그렇게 해야 돼요. 처음에 힘이 붙을 때까지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나요. 그 마음을 달래가며 당겨 오죠. 자기 안으로 당겨 오다보면 그 마음이 무쟁, 다툼이 없는 상태가 되요. 그 무쟁이 다 이루어진 걸 무쟁삼매라고 해요. 무쟁삼매와 오롯하게 나와 합일된 것을 법장이라고 얘기한다 말이에요. 그걸 여래라고 하고. 부처님의 마음은 다툼이 없잖아요. 부처님과 다퉜다는 애기 들어보신 분 손들어보세요? 없잖아요. 왜냐하면 그분은 원래 그런 분이기 때문에. 그걸 성취한 분이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의 다툼이 없어야 되요. 다툼의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2가지가 딱 있어요. 뭐가 있냐? 지난 일에 대한 후회가 있어요. ‘그 때 그럴걸. 그 때 말야. 그 아파트를 사놓는 건데. 그 때 애를 거길 보냈어야 했는데.’ 이런 후회가 있죠. 또 하나는 걱정이에요. ‘나이는 자꾸 먹는데 어짜노, 애는 결혼을 해야 하는데 안가고 왜 저러고 있나.’ 별의별 걱정이, 오지 않는 거에 대한 걱정이 있어요.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 계실 때 이야기입니다. 어떤 장자가, 나이가 지긋하게 먹은 분이 권력도 있고, 누릴 만큼 누린 분이에요. 그런데 늘 마음속에 찜찜한, 뭔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는 거예요. 그걸 ‘부처님께 여쭤보면 해결을 해 주시겠지.’ 하고 부처님을 찾아가는데, 부처님을 찾아가는 길에 죽 수행자들이 있었어요. 남루한 옷에 편안한 얼굴에 앉아서 좌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 모습이, 얼굴이 너무 편해 보이는 거예요. 자기가 못 느꼈던 그런 기운을 느낀 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가서 솔직하게 이야길 했습니다. “부처님. 제가 늘 마음이 후회스럽고, 늘 뭔가 걱정이 됩니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그런데 오다보니까 스님들이, 대중승가들이 있는데, 보니까 마음이 늘 밝고 맑고 편안하고, 그렇게 늘 편안하게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 “나의 제자들은 과거의 일로 인해서 후회하지 않고, 미래의 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늘 지나간 다음에 후회하고 늘 오지 않은 일 때문에 걱정을 한다. 마치 오뉴월 한여름에 뙤약볕에 베어 논 갈대처럼 메말라간다.” 가만히 보면 우리가 늘 후회와 걱정 때문에, 오뉴월 갈대를 베어 놓아보세요. 빠짝 말라, 배배 꼬여 물을 줘도 펴지지가 않아요. 한번 꼬인 마음은 그렇죠.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무쟁하는 마음을 얻으려면 지난 일에 후회하지 말고, 후회 안하고 지난 일에는 참회를 하는 거예요. 아직 오지 않은 일을 걱정 하는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일에 서원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습관적으로 후회와 걱정을 합니다. 왜 걱정을 합니까, 서원할 수 있는데. 대학입시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대학입시기도를 하면서도 ‘우리 아이만 꼭 붙게 해주세요.’하지 말고, ‘우리 아이가 대학을 붙어서,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부처님을 잘 볼 수 있는 인연을 맺게 해주십시오.’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학 들어가서 열심히 살아요. 합격만 바라면 합격한 다음에 공부를 안 해요. 그러니까 허한 짓 하고 다니는 거예요. 제가 소임을 살 때 어떤 젊은 분이 와서 아이가 정신이 없대요, 집중을 못하고. 스님께서 애가 정신 차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내가 안 된다고 했어요. “보살님, 가만히 들어보세요. 대학을 정신없이 다니다가, 취업한다고 정신없이 다니다가, 연애를 정신없이 하다가, 정신없이 결혼을 했네. 정신없이 신혼여행 갔다가, 정신없이 신혼살림 차렸다가, 정신없이 애를 낳아가지고, 정신없이 애를 키웠어. 그럼 정신 있는 애가 되겠어요, 정신없는 애가 되겠어요?(웃음) 자기가 정신없게 해놓고는 애가 정신없다고 그래요. 애가 정신을 차리려면 본인부터 정신을 차려야 해요. 그러니까 발원할 때도 ‘우리 남편, 사위 잘 되게 해주십시오.’ 하면 남편 사업이 잘 되긴 하지만 다른 일이 생겨요. 아프거나, 그래서 많이 절에 옵니다. 바람피우거나. 엄한 짓을 해.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남편의 사업이 잘 돼서 부처님 시봉할 인연을 맺게 해주십시오.’ ‘아이가 공부를 잘 해서 부처님 시봉을 잘 할 수 있는 인연을 주십시오.’ ‘똘똘한 손주, 손녀가 태어나서 부처님 시봉을 잘 할 인연을 맺게 해주십시오.’ 라고 태아기도해야 합니다.(박수) 걱정하고 후회하지 말고 참회 열심히 하고, 서원 열심히 세우자. 그래서 다라니 기도를 열심히 하다보면 다 정리가 된다. 아셨죠? 다라니기도는 알아서 다 정리가 된다. 굳은 믿음으로 늘 부처님과 함께 하시는 그런 사부되시길 바라고요. 여기서 법문 마치겠습니다.
-
[천일기도]천일기도 중 200일 기도 회향 법문
조계종 포교부장 가섭스님 2019-10-30
- 기도는 함께 가는 길입니다. 곁을 지켜주는 마음이 모든 것을 이룹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오늘은 덕원스님의 200일 회향이라고 들었습니다. 천일기도 중에 200일은 첫 고개를 두 번째 넘는 거지요. 기도를 해보면 제일 어려운 때예요. 100일째가 제일 어렵지만, 이제 조금 기도 맛을 알면서도 어렵기 때문에 200일 째가 아주 어렵습니다. 이건 해 본 사람만 알아요. 이때에는 본인의 원력도, 다짐도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주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마도 오늘 진관사 신도분들께서 그런 마음을 모아주기 위해서 이 자리에 함께 하신 것 같습니다. 기도는, 그것도 천일기도는 앞으로 진관사의 천년의 역사를 준비하는 겁니다. 그동안 진관사의 천년의 역사가 많은 스님들의 기도와 회향,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지금의 기도는 지금의 자신을 닦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 보면 진관사의 미래 역사를 준비하는 것이고, 한국불교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의미 있는 불사라고 생각하면서, 우리 덕원스님의 200일 회향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200일 회향은 본인이 원력을 세운 바도 있지만, 여기 있는 모든 분들 한 분 한분의 마음이 모아져서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800일 동안도 지금 마음과 변함없이 이뤄지기를 다짐하고 약속하는 의미에서, -이건 스스로의 약속이에요, 여기 계신 분들이 앞으로 천일 회향할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것. 기도 중에 제일 큰 힘은 곁을 지켜주는 겁니다. - 그런 약속의 의미로 박수 한 번 칠까요! 이제 법문 다 끝났습니다.(웃음) 그래서 제 소개를 좀 하면, 제 이름은 가섭이라고 합니다. 호는 중경이라고 하는데, 가섭이라는 이름은 많이 들으셨죠? 가섭존자 때문에. 저도 덕원스님처럼 시봉이 하나 있어요. 거기도 천일기도 중인데, 그것도 북한산에서. 여기 올라가면 중흥사라고, 거기서 500일 기도를 넘겨서 600일 다 되갑니다. 그런데 상좌하나가 해인승가대학을 다닐 때 방학하면 절에 오거든요, 인사한다고. 2학년 쯤 와서 울상인 거예요.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까, 망설이다가 “스님, 이름을 좀 바꿔주시면 안 돼요?” 하는 거예요. “누구 이름을?” “스님 이름이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보통 은사스님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위자는 무슨 자요, 아래 자는 무슨 자’라고 대답하거든요. 이름 댈 때마다 “위자는 가자요, 아래 자는 섭입니다.” 한 거예요. 그러면 스님들이 “네 스님은 가짜냐?”고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맘이 상해 왔어요. “그래, 나 원래 가짜다. 가짜 아닌 게 어딨냐, 다 가짜지.” 하고 넘어갔어요. 한 6년 전에 제가 지금 포교원장 스님께 건당법호를 받았어요. 제가 중경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중자 경자예요. 중자예요, 대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자도 아니에요. 그냥 중자예요. 이제 이름 안 잊어버리겠죠. 오늘 200일 회향이니까, 기도할 때 함께 곁을 지켜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함께 하는 게 중요한지 짧게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워낙 진관사는 역사가 있는 절이기도 하고, 절도 많지만, 제가 보기에는 절이라고 다 똑같은 절은 아니에요. 절중에서도 상품 절이 있고, 중품 절, 하품 절이 있어요. 진관사는 참 격조 있는 절이에요. 올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깔끔할 수가 없고, 스님들이 그렇게 정갈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기분 좋다,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그런 사찰에는 스님들도 있지만, 그 사찰에서 함께 신행하는 신도들의 마음자세도 중요해요. 우리 마음속에는 각자의 고민과 갈등과 어려움이 있지만, 진관사에 딱 들어오는 순간 진관사와 하나로 어우러진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색깔 내지 않고, 진관사의 스님들이 이끄는 대로, 이렇게 잘 어우러진 것 같아요.(박수) 진관사는 한 폭의 그림 같아요. 그 그림은 경전 속에 나오는 화합승가가 그대로 구현되는 거 같아서 참 기분 좋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잘 아시겠지만, 여러 가지 바람을 가지고, 원하는 게 있기 때문에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기도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 출발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이냐 보다도, 출발은 각자 다르더라도 그 과정을 거치면서 다져지는 마음이 중요하거든요.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어요. 이 선물을 얼마큼 내가 많이 받아가는 가는, 출발은 다르지만- 우리가 진관사에 올 때 출발은 다 다르잖아요. 어떤 분은 근처에서 오신 분도 있고, 종로에서 오신 분도 있고- 올 때 마음은 ‘진관사에 가야 되겠다, 부처님 뵈러 가야겠다, 스님 뵈러 가야겠다.’ 하고 오잖아요. 이 마음으로 이 법당에 어우러져 있잖아요. 그런 마음을 다 가져왔을 때 부처님 선물을 받아갈 수 있는 건데, 마음속에 집에서 속 썩던 걸 다 끌어안고 오면 부처님 선물을 담아갈 그릇이 없어요. 그래서 오면서 이런 것을 다 내려놔야 합니다. 내려놓으라고 길에 다리도 놓고 약간 언덕도 있어 숨도 차고 그러잖아요. 법당에 부처님 앞에 딱 앉았을 때는, 명심할 것은 첫 번째는 지혜로운 마음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자비로운 마음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절에 다니면서 지혜와 자비는 억수로 많이 들었을 거예요. 그러나 막상 지혜가 뭐냐, 자비가 뭐냐고 물어보면 애매해요. 뭘 알기는 알겠는데, 똑 부러지게 이야기를 못하겠어요. 이건 법랍이 많아도 마찬가지예요. 요금 스님들은 출가한 이후를 승랍이라고 하고, 법계를 받으면 법랍이라고 하는데, 신도들은 절에 오래 다닌 것을 절랍이라고 한대요. 제가 여기 보니까 절랍이 10년 이상, 많게는 40년 이상이 되는 거 같은데, 절랍이 오래 되어도 지혜가 뭐냐고 가족들에게 설명할 때 잘 안 돼요. 자기 것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게 되면 자연스럽게 됩니다. 잊고 있다가도 그 자리에 가면 되는 게 자기 게 된 거예요. 자전거를 배울 때 생각해 보세요. 처음 배울 때는 엉거주춤하지만 막상 배워놓고 자전거 탈 일이 없어요. 10년을 안 타다가, 탈 일이 생겨 타면 타져요. 그게 자기 거가 된 거예요. 지혜가 뭐냐. 지혜는 맑고 밝은 마음이에요. 지혜가 생겨서 뿔이라도 생기고, 미래가 보이는 게 아니에요. 덕원 스님이 열심히 기도하는 게 특별한 능력이 생기려고 기도하는 게 아니에요. 덕원스님이 지금 기도하는 이유는 뭐냐. 지금 마음을 맑고 밝게 하기 위함이에요. 이게 출발이에요. 내가 지혜로운 사람인가를 알려면 자리에 앉아 내 마음이 맑고 밝은가를 보면 알아요. 이건 0.5초도 안 걸려요. 이건 누가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본인만 할 수 있어요. 이건 부처님도 못 해줘요. 나만 할 수 있어요. 법당에 딱 앉으면 숨을 깊게 쉬면서 ‘내 마음이 밝은가, 맑은가’. 이게 출발점이에요. 마음이 밝지도 맑지도 않은데, 탁하고 어두운데, 어떠한 소원이 이루어지겠어요. 거기에 어떠한 원이 성취가 되겠습니까. 밝고 맑아야 명징하게 사물이 보이듯이, 맑고 밝아야 내가 하고자 하는 길이 명확하게 보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법당에 오시면 부처님께 삼배하고 나서 내 마음이 맑은지 밝은지 부터 살펴봐야합니다. 그리고 맑고 밝지 않다면 맑고 밝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 자리에 부처님의 지혜가 내려앉는 거예요. 그것도 알고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를 드러내는 것뿐인데, 우리가 신앙적으로 표현하다보니까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내려앉는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두 번째는 부처님의 자비인데, 자비는 뭐냐. 따뜻한 거예요. 온화한 거예요. 그래서 내 마음이 자비로운가 살피려면 앉아서 내 마음이 따뜻한가, 온화한가, 온순한가 봐야 해요. 마음이 차갑고 굳어있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틀 수가 없어요. 이 자비라는 것은 경전에 보면 생명을 움트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하고, 부처님을 자비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자비로서 다가오시고, 자비로서 이끌어주시고, 자비로서 우리를 제도해 주세요. 그래서 부처님 자체가 자비에요. 부처님=자비에요. 그 자비를 맑고 밝게 쓰기 위해서 지혜가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살다보면, 이 사문만 벗어나면 맑고 밝게 , 따뜻하고 온화하게, 온순하게 하기가 쉽지 않아요. 가깝게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속을 썩이고, 제일 가까운 사람이 제일 말을 안 들어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제일 내 뜻대로 안 돼요. 제일 가까운 사람이 누구에요? 가족? 남편? 제일 가까운 사람은 나예요. 내가 제일 내 뜻대로 안 돼요. 내 뜻대로 되려면 지혜롭고 자비로워야 되는데, 그렇게 안 되는 이유는 그 힘을 지금까지 안 길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참회입니다. 참은 과거에 했었던 것을 다시 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는 것이고, 회는 미래에 내가 지을 바 불선업을 짓지 않겠다고 서원을 세우는 것이 회에요. 참회는 무시이래로 모든 것을 참회하는 건데, 참회를 해야만 자기 자신이 맑아지는 것이고, 참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부처님 앞에 토해내야 해요. 그래야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는 거예요. 참회라는 것은 반성하는 건데, 우리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서 갈등도 하고 대립도 하지만, 저는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 가지고 있는 것은 사회적 부, 권력,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고, social position이 있는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는 말을 못하는 사회에요. 저는 이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그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정말 힘 있는 사람들이 잘못할 수 있지요, 그 때 잘못 했다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안돼요. 잘못한 걸 덮으려고 하니까 부정과 부패가 생기는 거예요. 그건 불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다보면 착하지 못한 업을 질 수 밖에 없는 한계에 살잖아요. 그걸 덮으려고 하지 마시고, 그걸 숨기려 하지마시고 그걸 그대로 드러내는 것, 그게 참회에요. 참회진언 다 아시죠?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참회진언을, 점심 먹으면서 참회진언을, 저녁에 잠들면서 참회진언을 해보세요. 참회라고 하면 내가 크게 잘못을 해서 뭔가 반성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참회진언의 뜻을 알면 이게 기가 막힙니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옴은 길상이란 뜻이잖아요. 못자는 부처님이란 뜻이에요. 모지는 보리, 지혜라는 뜻이에요. 사다야는 살타의 뜻이에요, 야는 복수, 여럿에게, ~들의 뜻입니다. 사바하는 이루어지다, 귀의하다의 뜻입니다. 길상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에게 귀의하다라는 뜻입니다. 참회진언을 해석해보면 내 마음에 길상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가득가득 채워나가는 것이 참회진언입니다. 우리의 참회에는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것도 있지만, 진참회는 내 마음속에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채워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상에서 부처님을 생각하고, 보살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보살님들의 가피력을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참회예요. 그러니까 참회진언을 해야 합니다. 참회진언을 하는 것은 부처님과 보살님들을 채워나간다는 자기 다짐이기 때문에, 그걸 통해서 자기가 성장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참회진언을 통해서 내 마음을 지혜롭게, 자비롭게 채워나가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곁을 지켜줘야겠습니다. 제가 오늘 오는데, 법문을 30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시간이 넘으면 신도들이 싫어해요. 2-3분이라도 일찍 끝내줘야 해요. 그래서 한 가지 얘기만 하고 오늘 법문을 마칠까 합니다. 중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스님이 신도들을 데리고 여행을 갔어요. 젊은 스님인데, 비가 추적추적 오는 거예요. 중국에는 성지가 워낙 많으니까 성지순례를 간 거예요. 제 얘긴 아니에요.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한 80세가 된 노보살님이 스님을 딱 만나는 순간 비가 오는데 그 비에 젖은 땅에 엎드려 오체투지를 하는 거예요. 젊은 스님이 너무 당황했어요. 말렸지만, 노보살님이 3배만 할 줄 알았는데 계속 하더래요. 가이드를 불러 절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려달라고 했대요. 이 젊은 스님은 오도 가도 못했대요. 안 받고 가려니 신도들 눈이 있고. 우리도 생각하면 초파일 제등행렬 때 등을 들고 앞에서 가면 노보살님들이 그 아스팔트에서 절을 해요. 그때마다 울컥울컥해요. 그 절을 받기도 부끄러운 거예요. 한편으로는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스님도 그런 마음이었겠지요. 가이드가 노보살님에게 “절하지 마세요, 스님께서 불편해하십니다.”하니까, 그 노보살님이 합장을 하고 “나는 스님에게 절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마음속의 부처님께 절을 한 것입니다.”라고 하셨대요. 이 젊은 스님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 노보살님은 그 스님의 불성에 절을 한 거예요. 우리는 다 그걸 가지고 있잖아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노보살님들이 절을 하시는 것 보면, 절을 받으면서도 ‘저분이 나 가섭이 아니라, 내안의 가섭분에게 해야하는데.’라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절을 할 때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절을 하면 좋겠고, 또 절을 받는 사람들도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부처님에게 절을 하는 거구나.’하고 좀 더 겸손하게, 좀 더 겸양하게 수행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진관사 신도분들 다 그러시겠지요? 앞으로 남은 800일 동안 지금 마음처럼 변함없이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요. 합장을 같이 해주시겠습니까? (축원)
-
[신중기도] 10월 28일 신중기도 법문
주지스님 2019-10-28
으뜸가는 10월 상달 바른 신심(信心)으로 기도하기 안녕하세요. 벌써 음력으로 10월 초하루입니다. 음력10월은 결제의 달이기도 합니다. 10월 보름이 결제고, 해제는 다음해 정월 보름입니다. 날씨가 좀 쌀쌀한 거 같기도 하고, 적당히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계절이에요. 1,2,3,4,5,6,7,8,9월 지나와서 백중 49일간 지장기도 했고, 수륙재를 원만회향해서 어제 봉사자들과 같이 공양도 했습니다. 수륙재 원만히 잘 마치셨죠? 10월은 12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이라고 해서 상달이라고 합니다. 왜 ‘상’인지 아십니까? 제일 중요한 달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농사를 지으면서 오곡이 풍성해서 그 고마움을 조상님들이든지, 모든 자연에 떡을 좀 해서, 과일을 좀 풍성하게 올려서 고맙다는 제사를 올리기도 하고, 모든 행사를 하는 게 10월이에요.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가 광명사(廣明寺)의 문장노(文長老)를 만나 지은 시가 있어요. 露重楓初染<로중풍초염>이요 찬 이슬 내리니 단풍이 들고 霜深菊自開<상심국자개>요 찬 서리 내리니 국화가 절로 핀다 . 晩色猿啼送<만색원제송>하니 석양 빛은 원숭이가 울어 보내고, 秋聲雁挽廻<추성안만회>라 가을 소리는 기러기가 끌고 온다. 찬 이슬 내리면 국화가 그렇게 윤기가 난다고 그래요. ‘벌써 세월이 가을이구나’, 무상함을 느끼는 거예요. <기러기 울어예는..>노래도 있지요. 가을이 되어 기러기가 ‘끼룩끼룩“하면 ‘아, 벌써 가을이구나.’ 삼월삼짇날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와서 가을되면 가고. 벌써 10월입니다. 10월이면 고사를 지냅니다. 안택이란 말 아시나요? 집안이 편안하길 기원하면서 안택불공 한다고 빨간 팥떡을 올려 조상들에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보통 가신신앙이라고 해서 신주단지를 모셨는데, 그 속에는 나락(쌀 처음 난 것)을 잘 모셔서 10월 상달 초하룻날에 그걸 바꿔요. 그 쌀은 다른 사람에게 안 줘요. 가족 외엔 안 줍니다. 그래야 복덕이 풍만하고 재앙이 없다고 했어요. 우리는 보통 제석신이라든지 성주신, 신줏단지라고 하는데, 절에서는 제석단지, 세존단지라고 합니다. 첫 수확한 쌀이나 나락 등을 모아 그 속에 놓고 1년 내내 잘 모십니다. 그리고 10월초하룻날 바꾸는 거예요. 마치 우리가 입춘날 소금, 팥, 숯을 준비해서 올리고 그 다음 해 입춘 날에 바꾸듯이 곡식을 바꿔줍니다. 이 곡식은 복이 담겨있기 때문에 가족들만 먹어야 재앙이 없고, 일 년 내내 무사 무탈하다고 해요. 여러분들은 그런 거 못 보셨죠? 예전 60년대 시골에서 농사짓는 곳에서는 다 하던 것입니다. 신줏단지라고 엄청난 위패를 모시는 게 아닙니다. 이 때 세존은 성주신이나 터주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예요. 또 전라도 강진군의 경우에는, 베로 주머니를 만들어 쌀을 넣고 방문 뒤에 걸고 세존단지라고 모셔요. 자기 성, 시아버지 성, 시어머니 성을 가진 집에 엽전을 7개 묶어 걸어두면 잘되었다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민간신앙입니다. 그것도 10월 초하룻날 하는 풍습입니다. 10월 상달은 1년의 농사가 마무리 됩니다.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 보면 조상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기간으로 열두 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로 생각하여 상달이라 하였다고 했어요.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舞天), 부여의 영고(迎鼓) 등 고대의 제천행사(祭天行事)가 10월 상달의 옛 모습이라 한다면 고려의 팔관회(八關會), 조선시대 민가의 고사 혹은 안택의식 등이 이어져 내려오는 모습이고, 오늘날의 상달맞이 고사, 안택굿, 시제(時祭, 예전에는 시제 후 각자 상을 하나씩 주었다고 합니다.), 산신제, 단오제 등이 그 맥을 이은 오늘의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혹시 집안이 불편하고 싸움을 자꾸 하면 팥떡을 해서 동네 친척들에게 좀 나눠주세요. 먹는 게 최고잖아요. 밥 달라는 사람에게는 밥을 줘야지요. 옷 달라는 사람에게는 옷을 주고, 돈을 달라는 사람에게는 돈을 주는 것이 민간신앙이에요. 이것이 정법은 아니에요. 옛날 어르신들이 하던 걸 그대로 따라서 하면 좋은 일이 있겠다, 예전에 어른들이 정화수 떠놓고 기도했던 것이 다 가정의 무사 무탈을 기원하고, 집안에 아무 일이 없기를 기원한 거예요. 또 그런 집이 잘 되요. 형제들끼리 싸움도 안하고, 돈이 없어도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어요. 요즘은 생사가 대사가 아니라 식사가 대사예요. 먹는다는 건 생명입니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데, 요즘은 먹는 것도 희한하게 먹어요. 적당히, 내가 소화시킬 만큼만 드시면 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전하기를 “충청도 보은의 속리산 꼭대기에 ‘대자재천왕(大自在天王)의 사당이 있고, 그 천왕이 매년 10월 인일(寅日)에 속리산 법주사로 내려오는데, 산중 사람들이 음악을 울리고 이 신을 모셔다가 고사를 지낸다. 천왕은 45일이나 놀다가 돌아간다고 한다.”고 했는데 고래로 내려오는 10월 상달의 제천의식과 불교가 만난 좋은 사례라 하겠습니다. 10월 상달이 되었으니 바른 신심으로 기도해야 하는데, <법화경>에 보면, “부처님의 방에 들어가, 부처님의 옷을 입고, 부처님의 자리에 앉아 법을 설한다.” 법문을 듣기도 합니다. 여기 여러분은 부처님 자리에 앉은 겁니다. 부처님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화를 내고 탐욕을 부려야 하겠습니까? 안되지요. 慈室忍衣(자실인의), 자비의 집과 인욕의 옷을 입고서 부처님 자리에 앉아 법을 듣기도 하고 설하기도 합니다. 항상 부처님 법과 같이 대비해 보세요. 속인들과 대비하지 말고, 불법과 대비하시면, 내가 앉은 자리는 법좌다, 내가 입은 옷은 여래의 옷이다, 내가 들어온 곳은 여래의 방이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당신은 부처님>이라고 했으니까 부처님의 방에 들어가, 부처님의 옷을 입고, 부처님의 자리에 앉아 부처님의 법을 듣는다, 이러면 세상에 시시비비가 없고, 다 긍정적이 되고, 만사형통이 됩니다. 안 되는 게 없는 거예요. 안 된다, 시시비비하면 그 사람은 끝내 시시비비하다 끝납니다. 잘 못하면 심장마비 걸립니다. 우리가 신경을 안 쓴다 해도 알게 모르게 신경을 쓰거든요. 되도록 단조롭게 단순하게 생각하시고 모든 걸 편안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쉽게 갈 일도 어렵게 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적당히 잘 가셔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신자를 “불자(佛子)”라고 하는데, “부처님의 자식(제자)”이라는 뜻입니다. 이유는 자식은 어리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듯이, 중생은 어리석지만 나중에 부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듯이 중생이 미래에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는 오정신행(五正信行 : 다섯가지 바른 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신장익(信長益)이니 믿음(신심)을 더욱 크게 자라게 하는 것이다.둘째는 계장익(戒長益)이니 계율을 더욱 잘 지키는 것이다. 셋째는 문장익(聞長益)이니 법문을 더 많이 듣는 것이다. 넷째는 시장익(施長益)이니 보시를 더 많이 하는 것이다. 다섯째는 혜장익(慧長益)이니 지혜가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남자 선녀인이 바르게 신행하는 다섯 가지 길이다. - 증일아함 48권 예삼보품(禮三寶品) 제7경 첫째 믿음을 더욱 자라게 해야 한다(信長益)는 것은 진리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삿된 것을 믿는 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연기의 이법(理法)을 진리라고 믿고 스스로 바르게 닦아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누가 뭐라고 해도 삿된 길에 빠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절에 와서 스님의 법문을 들어야 하는데, ‘어디 용한데 있으니 가자.’고 해요. 그게 삿된 길로 가는 거예요. 점집에는 잘 되는 사람은 오는 법이 없어요. 근심걱정이 있는 사람이 가지. 그런 사람에게 겁을 줍니다. 그런 곳에 절대로 가지 마세요. 되도록 바른 믿음, 바른 견해, 바른 신심 있는 에너지가 충만한 곳에 오셔서 기도 열심히 하는 것에 충족해야지, 사사로운데 끌리면 안 됩니다. 둘째 계율을 더욱 잘 지켜야 한다(戒長益)는 것은 항상 올바르게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윤리도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이웃과 싸움도 안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의 규범에서 벗어나면 시비에 휩싸입니다. 규범이 아니더라도 악행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십악업을 바꾸면 십선행이 되는 겁니다. 천수경에 <살생중죄 금일참회...> 참회만 하는데도 어느 때 보면 참회가 없어져요. 머리로만 하지 말고 실제로 하셔야 합니다. 실천이 최고입니다. 바르게살기를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문수의 지혜와 보현의 실천을 가지고서 지와 행을 합일하게 해야지만 바른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셋째 법문을 더욱 많이 들어야 한다(聞長益)는 것은 바른 법을 배우기를 주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법당에 오래 앉아있으면 향내가 몸에 배듯이 자주 절에 나가 법문을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근공덕이 있어 불법을 깊이 알고 실천할 마음이 생길 것은 당연합니다. 넷째 보시를 더욱 많이 해야 한다(施長益)는 것은 복을 많이 지으라는 것이죠. 복이란 뒤주 속의 곡식과 같아서 채워 넣지 않으면 금방 바닥이 납니다. 남을 도와주고 선행을 베풀면 그것이 공덕의 씨앗이 되어 보물창고를 채우게 됩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전생에 많이 베푼 사람들입니다. 자꾸 베푸는 것이 습관화되야 합니다. 남의 것 자꾸 가지려고 하지 말고 자기 것을 주려고 생각하세요. 다섯째 지혜가 더욱 빛나게 해야 한다(慧長益)는 것은 어리석음을 씻어내고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참다운 지혜는 진리를 바로 깨닫고 깨달음의 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기도 많이 하면 지혜로워집니다. 한 시간을 기도해도 열심히 일념으로 하셔야 합니다. 삼매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을 편안히 하고, 하루에 십분이라도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래의 방에 들어가서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았으니까 부처님 생각만 하고 좋은 생각 내시면 좋은 사람 되는 거예요. 여기서 좋은 사람이란 착하고 악한 것을 떠나서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지혜로운 사람이 최고의 불자입니다. 10월 상달, 으뜸가는 달, 모든 걸 베풀어 나눠먹는 달입니다. 다같이 부처님 되십시다.